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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글에 사진을..

#55 여행지의 벽에 적은시..

 

여행지의 벽에 적은 시 /  류시화

 

그대가 떠나는 것은 집이 아니라

어제까지의 그대 자신

그대가 뒤로하는 것은

발목을 붙잡는 손이 아니라

불과 어름의 감정들

책상 속에 두고 가는 것은 일기장이 아니라

고장 난 시계와 부서진 자아.

 

서랍 뒤쪽에 구겨진 채 숨겨진 계획표
상처를 상처라고 부르기 위해
원했던 것과 원하지 않았던 것 모두

내려놓고 떠나는 자.

 

그대는 세상과 싸우러 가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도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것이니

가져가야 할 것만 배낭에 넣고

새벽 기차역으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이

그대 존재의 무거움을 받쳐 주기를.

 

가는 곳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장소일 것이니

그곳들은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낯선 길에서 그대가 잡는 손들이

온을 그려 그대를 껴안아 주기를

그 원 안에서 소유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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