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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이 만나면♧ /♡끄적끄적

그녀가 떠났다...

 

 

    그녀가 떠났다... 유년시절 우리 고향은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둥지를 튼 집성촌은 아니지만 천주교 집성촌 같은 마을이였다 지금은 좀더 편리하고 기능이 추가된 고운 그릇에 밀리어 이용도가 떨어지는 옹기그릇이 햇빛에 유리그릇처럼 반짝반짝 빛이나는.. 거의 천주교 신자로 이루워진 동네에서 몆안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였던 코흘리개 친구 하나가 있었다 초등 학교를 졸업하고 여의치 못한 형편으로 진학을 못한 친구는 가정 경제를 돕기 위해 서울로 또 어떤 친구는 좀더 나은 학교 진학을 위해 도시로 그렇게 어느새 각자의 갈길로 진로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코흘리개 친구들과의 교류는 쉽지 않은 일로 되고 말았었다 그렇게 세월에 밀려 부모라는 위치에 서게 되니 더없이 바쁜 생활이 되고 또 세월에 밀리어 반백을 이고선 지금에 와있다 몇해전 우연히 동창들과 연락이 닿아 고향 동창회에 나가 그 친구를 만나게 되고 평탄하지 않은 그녀의 삶을 듣게 되었다 별반 교류가 없던 친구였는데 많이 외로웠는지 몇십년만에 마주한 내게 서슴없이 자기 속내를 털어내는 그녀의 뒷모습이 많이 쓸쓸해 보였었다 그런 그녀에게 삶은 누구나 얼마만큼의 짐을 지고 가는 나그네길 아니겠냐며 위로가 안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일로 그렇게 만남이 정지된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다시 시작한 생업으로 나는 동창회 참석도 쉽지 않고 개인적인 친구들의 침목에도 참여할수 없이 그저 간간히 손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소식.. 그 소식속에 처녀의 몸으로 전처 소생3명이 함께인 18살 년상의 남편을 만나 평탄지 않은 고뇌의 삶을 살았던 그녀의 외로웠던 삶의 모습이 전해져 왔고 그 연상의 남편이 지병으로 있던 재산 거의 탕진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는 비보가 전해져 왔다 그 여파였는지 삶의 굴곡이 만들어낸 산물이였는지 여기 저기 몸이 좋지 않다는 전언뒤로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는데 어찌 그리 가슴에 먹먹해 오던지 몇십년 만에 만난 나에게 그래도 고향 친구라고 속내를 봇물 쏱아내듯 쏱아내던 그녀의 그마음이 짠하게 나의 가슴에 돌덩이 하나 얹는 순간이였다 생업에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의 비보에도 제대로된 위로의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상태였는데 예기치 않게 그렇게 갑자기 떠나다니 비록 배아파 낳지는 않았지만 가슴으로 나은 자식을 어린나이에 셋 씩이나 키워내면서 일일이 말못하는 어려움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데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가슴으로 키워낸 자식들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었다는 전언이 가슴을 더 짠하게 만들었다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외로운 길이였을까를 가늠해 보니 참으로 쓸쓸한 생각이 가슴을 누른다 그래 맞다.. 누구나 떠나는 자유로울수 없는 여행길에서 홀로인 여행길에서 어찌 한들 외롭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피를 나눈 동생 혼자서 치뤄낸 장례식 이야기가 가슴에 메아리를 치며 떠나질 않는다 좀더 따뜻한 말한마디라도 건네줄껄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내게 태통령 보다 보기 힘든게 네 얼굴이라며 이번 초등 망년회땐 꼭 얼굴좀 보여주라고 투정 섞인 농담을 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그렇게 그녀는 이생을 다녀간 흔적 하나없이 소풍길을 마쳤다 그 길이 어떤 길이였는지 난 알길이 없다 그저 내 판단으로 너무 쓸쓸했을 꺼라는.. 좀더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주지 못한 내 자책감으로 힘든 시간이 내게 남았을 뿐이다 그렇게 친구라는 이름으로 내 기억에 있던 그녀는 쓸쓸히 우리곁을 떠났다... 2014.12.24/하늘정원